시리즈 팬인 관계로 첫 리뷰에서는 억지로 높게 평가를 했지만... 어떻게든 호의적으로 해석해주려고 내용을 분석하면 분석할 수록 구멍만 나와서 점점 평가가 깎이고 있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팬이라 '억지로' 납득한 수준이지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절대로 12RiVEN의 트릭은 받아들일만한 게 못 됩니다. 어디가 이상한지 본격적으로 한번 까봅시다.
기본 원리 :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뇌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텀은 약 0.5초. 그러니까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는 실제의 현실보다 약 0.5초 과거의 세계라는 소리.
* 일단 신경전달에 0.5초는 너무 오래 걸리는 거지만 넘어가줍시다.
그런데 우리는 잠재의식으로도 세계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서브리미널 효과가 그것. 이성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잠재의식은 그걸 인식해서 충동에 영향을 주는 것. 즉, 실제로 대뇌가 인식하는 현실과는 달리 식역하라고 불리는 잠재의식/무의식은 자극 자체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지하는 부분을 식역하라고 부르고, 텀이 없이 바로 현실의 세계와 같은 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현실세계 = 무의식의 세계이자 식역하가 인지하는 부분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실제로는 대뇌가 인지할 수 없는 미미한 자극 수준인 것 뿐, 12RiVEN에서 원하는 논리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정도도 넘어가 줍시다.
자, 그런데 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저 시간텀이 길어진다고 해 봅시다. 감각기관에서 대뇌에 정보가 전달되기까지 24시간이 걸린다고 해보죠. 그럼 어떻게 되는가? 당연히 인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시간축을 보내게 됩니다. 인식의 세계에서 인지하고 있는 세계는 실제 현실의 하루 전이라는 소리. 즉, 인식의 세계에서는 과거를 경험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인식의 세계를 A세계라고 칭합시다.
만약, 그 시간차가 12분이 넘게 되면(게임 내 설정) 자아와 식역하는 완전히 분리되어버리고, 자아는 A세계에 남아서 돌아올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는 식역하만 남아있게 되고, 이 식역하는 무의식에 의한 자극반응이기 때문에 식역하만 남은 사람들은 로봇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자, 여기까지가 12RiVEN이 가진 기초 세계관이고, 이 부분까지는 사소한 모순점은 있지만 명료하게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터무니없이 뻥튀기되기 시작합니다. 어디 볼까요.
12RiVEN의 초능력인 Ψ의 원리를 살펴봅시다. Ψ는 저 시간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습니다. 최대 자아가 돌아올 수 있는 12분까지. 자, B라는 사람이 저렇게 신경자극과 자아 사이에 12분의 텀을 두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A세계에서 B가 보고 있는 시점은 현실의 12분 과거. 여기서, A세계에 영향을 주어서 현실세계의 역사를 바꾼다는 것이 12RiVEN초능력의 원리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 B가 카드를 한 장 들고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A세계로 가서 카드를 찢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A세계의 카드는 찢어져 있지만 현실세계의 카드는 멀쩡하겠죠. 그 상태에서 시간차를 원래대로 되돌립니다. 그럼 둘이 합쳐지면서 현실세계의 카드도 찢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실수. 게임 내의 논리 설명으로는 어디까지나 무의식의 세계가 이미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고, A세계는 그 정보가 전달되는 게 늦기 때문에 대뇌 안에서 과거'시점'으로 인지하고 있는 세계가 됩니다. 실제로 시간축으로 살펴봅시다. 게임 내에서의 주장은 저걸 따라서
(과거) <- 인식하고 있는 세계 --- (0.5초 후) --- 현실세계 ->(미래)
라고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세계를 0.5초 '늦게'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 현실세계 ---(0.5초 후)--- 인식하고 있는 세계 ->(미래)
가 되어야 실제로는 맞습니다. 시간축으로는 현실세계가 엄연히 먼저 발생하고, 그 다음에 인식의 세계가 발생하게 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걸 뒤집어서 A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세계에 영향을 준다고 인과관계를 반대로 설정했기 때문에 도저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한 겁니다. 실제로 저런 일이 있다면 인식의 세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 현실세계에서 초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죠. 예를 들자면 정보인식에 시간차가 생긴 상태에서, 버스를 타려고 한다. 그렇다면 대뇌에서 인지하고 있는 세계에서는 버스가 보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이미 버스는 간 뒤. 즉, 보이긴 하지만 탈 수는 없게 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일단 게임 설정상으로는 저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자아가 분리되어 있는 사람과 위치가 확정되어 있는 사물 아니면 존재를 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인과관계가 뒤집혀 있는 점은 확실.
이렇게 12RiVEN의 가장 결정적이자 기본이 되는 모순이 발생.
게다가 저 인과관계를 뒤집는 능력을 '초능력'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줍시다. (게임 내에서는 저 시간을 조절만 가능하면 누구나 Ψ를 쓸 수 있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택도 없는 소리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말이 안 되는 게, 실질적으로 Ψ는 과거를 변화시킨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 위에서도 말했지만 설정상 A세계에는 일반인은 존재하지 않고 자아가 분리된 사람들만이 존재합니다. 또한, 위치가 확정되어있지 않은 사물들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저 설정이 당연한 것이, Ψ를 사용해서 간섭할 수 있는 과거는 현재의 '12분' 전의 과거이기 때문에 현재와 12분 전의 과거가 동일한 상황이어야만 간섭할 수 있겠죠. 눈 앞에 지나간 차를 타려고 해도 12분 전의 과거로 돌아가면 그 차가 눈 앞에 없을테니 간섭이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 설정으로는 게임 내 나오는 대부분의 Ψ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A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경찰이 쏜 총을 어떻게 피할 수도 없음. A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위바위보를 이길 수도 없음. 또한 물리법칙에 어긋나는 초능력, 하늘에서 트럭을 떨구는-_- 짓도 가능할 리가 없죠.
뒤이어 A세계와 현실세계의 시간축 진행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단은 A세계와 현실세계는 일정시간의 차를 두고 동일한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전개가 됩니다. 논리상으로 A세계는 현실세계와 고정된 시간차가 있는 세계이니 시간흐름이 동일한 건 당연. 그렇다면, 자아가 A세계로 넘어와서 일정시간을 보내고 나서 돌아가면, 현실세계에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가 됩니다. 그동안 현실세계에서의 자신은? ...초능력은 커녕 그 시간동안 자아를 잃은 로봇상태가 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죠. Ψ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A세계에 가 있는 동안 현실세계의 시간은 정지상태여야 말이 됩니다만, 그렇다면 주인공 시점에서의 A세계와 현실세계에 24시간의 차이를 둔 12RiVEN의 기본적인 틀이 말이 안 되는 더 심한 모순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자아가 A세계로 괴리된 사람들인 이클립시의 존재도 불가능.
마찬가지로 Ψ크리미널이 12분동안밖에 A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이유가 자아가 식역하와 12분 이상 괴리되면 현실세계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데, 얼핏 들으면 들어맞는 것처럼 보여도 양 세계의 시간축을 생각해보면 현실세계의 시간이 정지해있는 경우밖에 저 논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양쪽 세계의 시간이 동시에 흐른다면 아무리 A세계에 있어도 두 세계의 시간차가 12분으로 고정되니 말이죠. 현실세계의 시간이 정지해 있다면, A세계에서의 시간이 12분 지나면 현실세계의 시간을 넘어서는 사태가 발생하므로 돌아간다고 설명할 수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게임 내의 설명하고는 다르고.
인과관계를 A세계>현실세계로 둔 것처럼 시간축도 A세계를 기본으로 해서 현실세계를 끼워맞추었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
결과적으로 두 세계에 시간차이를 둔 건 좋은데 그 사이에 어정쩡하게 인과관계를 넣은데다가 우선도를 A세계를 기준으로 한 실착을 범해서 완전히 시간축이 걸레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_-; 인피니티 시리즈의 특성은 한가지 트릭만 납득하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좋은 게임이었는데, 이 12RiVEN은 트릭이 입체적으로 엮인 바람에 서로 꼬리를 물면서 모순이 발생해서 모순 하나를 넘어가 준다고 해도 다른 모순을 해결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플레이할 때는 인피니티 시리즈의 특성을 즐기기 위해서 이해 불가능한 현상이 계속 나와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나름대로 긴박감있는 전개가 볼만 했습니다만, 차분히 분석해보니 이거 뭐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깔거리가 쏟아지잖 ㅡ; 12RiVEN최대의 문제덩어리인 Ψ를 완전히 없애고 시간차이에 의한 트릭으로만 게임을 짜고, 본편은 연애루트로 만들었으면 좋은 게임이 되었을 법도 했을 것을....... 아, 안타깝다. 솔직히 R11과 쌍벽을 이루는 괴겜이 될 듯.